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 '생계'의 울타리는 넓어질까
부모나 자녀의 소득이 높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생계 지원에서 제외되던 저소득층의 오랜 숙원이 마침내 해소될 전망이다. 정부는 생계급여 수급을 가로막던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급여 보장 수준도 함께 높여나갈 계획을 밝혔다. 이는 단순히 복지 수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을 넘어, 가족 형태의 변화와 사회적 부양의 책임을 재정의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생계급여는 신청자 본인의 소득과 재산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법적 부양의무자인 부모나 자녀의 소득 및 재산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많은 사각지대를 발생시켰다. 사실상 가족과 단절되거나 실제 부양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단지 서류상 가족이라는 이유로 생계 곤란에 처한 이들이 외면받는 사례가 끊이지 않아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높았다.
오랜 논란의 '부양의무자 기준', 왜 문제였나?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1961년 '생활보호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했던 조항으로, 국가의 복지 책임을 보충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가족의 1차적 부양 의무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사회관이 반영된 제도이다. 그러나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 가족 해체 등 사회구조 변화로 인해 '혈연 중심의 부양'이라는 전제가 흔들리면서 기준의 현실성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많은 경우 가족과의 관계 단절, 빈번한 다툼 등으로 실질적인 부양이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 신청을 좌절시키는 주요 원인이었다. 이는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고, 실제 생활고를 겪는 이들을 복지 사각지대로 내모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단계적 폐지의 로드맵은 어떻게 되는가?
보건복지부의 2026년 하반기 업무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국정과제에 맞춰 근로취약계층을 시작으로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구체적으로는 2027년 하반기부터 중증장애인 가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우선적으로 폐지하고, 2028년부터는 노인 가구를 대상으로 연령대별 순차 폐지를 검토할 방침이다.
그동안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2024년까지 부양의무자의 연 소득 1억원 또는 일반재산 9억원 초과 시 생계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던 기준을, 지난해 1월부터는 연 소득 1억3천만원 또는 일반재산 12억원 초과로 높여 수급 문턱을 낮추는 등 점진적인 개선을 시도해왔다. 이제는 기준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기준 폐지가 가져올 변화와 기대 효과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면, 신청자 본인의 소득·재산이 생계급여 기준을 충족한다면 부모나 자녀의 경제적 능력과 관계없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최소 11만 명 이상의 저소득층이 추가로 생계급여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중증장애인이나 고령층과 같이 근로 능력이 취약한 계층의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정부는 생계급여의 보장 수준 자체도 함께 높일 방침이다. 급여 지급 기준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 반영 비율을 단계적으로 올려 저소득층이 실제 받는 지원금을 확대하여, 이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소득 보전을 강화할 계획이다. 근로 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는 개인별 맞춤형 자활 프로그램과 자활기업 창업 지원 등을 통해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병행된다.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은 과제는?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환영할 만한 진전이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남아있다. 우선, 단계적 폐지 방식에 따라 중증장애인과 노인 등 근로취약계층에 우선 적용되지만, 그 외의 취약계층은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의 영향권에 놓여있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완전한 폐지를 위해서는 보다 신속하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급여 보장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급여액 자체가 현실적인 '최저 생활'을 보장하기에 충분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물가 상승률과 실질적인 생활비 등을 고려하여 기준 중위소득 대비 급여 비율을 충분히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더불어, 수급자의 자활과 자립을 위한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의 실효성 확보와 인프라 구축 역시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생계'에 대한 사회적 책임 확립의 의미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는 우리 사회가 '생계'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인식하고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모든 개인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시대적 현실을 인정하고, 국가가 모든 국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정책 방향으로 해석된다.
이는 단순히 취약계층에 대한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정성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사회적 투자로 볼 수 있다. 이번 조치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더 많은 이들이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며, 나아가 '생계'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